일단 아무리 개인이 혹은 두세 명 정도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대규모 메이커에서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룰을 만들기는 어려운데 왜 굳이 자작룰을 만드려는 건지 사실 저는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알피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모여서 플레이하는 세션입니다. 물론 미리 시나리오를 준비하거나 하는 행동들도 크게 봐서 알피지를 즐기는 일이긴 하지만 - 심지어 알피지에 대해서 잡담을 나누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죠 - 플레이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다 헛짓입니다. 물론 룰을 아예 새로 만들 거나 개조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즐거운 플레이가 제일! 그리고 그 플레이가 즐거울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그 다음! 나머지는 그냥 헛짓! 이라는 제 입장으로서는 좋은 룰이 있으면 그걸 쓰는 게 편하고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작룰을 만들고 싶어하시는 분들에게 일단 가이드를 잡아드리자면.

1.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명확한 이미지를 잡으세요.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고 시작하셨다면 그 시점에서 그냥 그만두시는 게 좋습니다.
특히 범용룰이라거나 쉬운 룰 같은 거 생각하셨다면 절벽으로 향하는 지름길입니다. 차라리 어떤 특정한 것만 플레이 할 수 있는 룰도 조잡하고 복잡한 기괴한 어떤 것이 훨씬 만들기 쉬워요. 범용룰이라거나 일반적인 팬터지 같은 건 대규모 메이커나 가능한 영역입니다. 쉬운 룰을 만드는 게 어려운 룰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작업입니다. 요즘 나오는 쉬운 알피지들은 30여년 간 알피지 산업의 발전이 쌓여서 이룩된 결과입니다.
솔직히 공개되어 있는 미니 식스나 겁스 라이트, 3.5 SRD 같은 걸 목표로 삼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심지어 그런 걸 참조하라고 추천해주시는 분들조차 있는데... 그런 건 거대한 빙산의 일부가 물 위에 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걸 만드시려면 빙산을 만드셔야 해요.
참조하실 건 그런 대규모 메이커들의 공개판이 아니라 개인이나 몇 명 단위의 그룹이 만든 인디 알피지들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당쟁을 플레이하는 알피지라거나, 카드로 각자 정해진 캐릭터를 분배한 다음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스토리텔링 시스템이라거나요.
어떤 알피지를 베이스로 해서 뭔가 만들겠어 라는 건 자작룰이 아니라 개조룰입니다.

2. 그 알피지의 가장 기반이 되는 메카니즘을 만드세요.
액션 계열의 알피지라면 룰 시스템이겠죠. 능력치 만큼의 6면체를 굴려서 6이 나온 것만큼을 성공수로 하고, 스킬을 나온 수에 더해서 6을 만들 수 있다 - 예를 들어 능력치가 4, 스킬이 3이면 6면체를 4개 굴리고, 나온 수 가운데 4, 5에 각각 3을 나눠서 6을 만들 수 있다 라거나, 스킬 만큼의 4면체를 굴려서 나온 수를 합하고, 그게 난이도보다 높으면 성공. 단, 4는 0으로 친다. 등등의 기반이 되는 룰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스토리텔링 계열의 알피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게 할 것인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각 캐릭터마다 그 캐릭터의 특징을 문장으로 표현한 것들이 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 특징들을 이용하거나 제약으로서 쓴다거나, 캐릭터들간의 관계나 사건 등을 위한 랜덤 테이블을 만들고, 주사위를 굴려 얻어진 그런 랜덤한 오브젝트를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같은 것들이죠.
어디서 베꼈다 같은 소리 안들으려면 가급적 독특한 게 좋습니다.

3. 문서화하세요. 그리고 자기가 마스터링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마스터링하도록 하게 합니다.
어차피 우리끼리 플레이 하고 말 거니까 만든 내가 플레이 할 때 이야기 해 주면 돼 라고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문장으로 만들어 문서화 한 다음 그 문서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어떤 부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이 마스터링을 하게 하세요.
그 사람이 이게 뭐야 라거나 이거 이해가 안 돼 라고 하는 부분이 있으면 문서에 그 부분의 설명을 추가하는 겁니다. 아울러 그 사람이 이런 이런 데이터 필요해 라거나 이런 몬스터 데이터 만들어줘 라고 하면 다 만들어주세요.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하고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마스터링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일단 알피지로서의 기초는 갖춘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 만들어서 자기만 알아먹도록 만들어 놓은 건 알피지 룰이 아니라 그냥 자기만족을 위한 자윗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자작룰의 거의 90%는 대체로 그냥 자기 만족이거든요. 사실 그건 룰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

어쨋거나 좋은 룰이 나왔다면 모든 알피지 플레이어들의 기쁨이죠.
나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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